나는 젊은 날을 일에 미쳐 살았다. 내 일을 하기 위해 채 학교에도 들어 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설득했다. 나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이라는 한 인간으로 나의 인생이란 것도 있다고 말이다. 심지어 둘째는 백일부터 아줌마 손에 자랐다. 우리 아이들은 평균보다는 높은 상위 2%대 지능을 가져 그랬는지 그런 억지 가득한 어른의 언어를 이해했다.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인생 자체가 목표와 계획, 실천으로 이루어져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현재는 없이 과거와 미래만이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순간 순간이 너무 행복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노는 취미도 없었고 친구들과 떠는 수다도 즐기지 않았으며 빈둥대는 성격도 못 되는데다 자는 시간까지 아까운 미래 준비형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쭉 그렇다. 딸랭이가 성인이 되고 보니 그런 엄마의 남 같지 않은 성격이 보였던가 보다. 며칠 전 서울대로 교환학생을 간 딸랭이와 통화를 하다 어떤 대화 끝에 엄마는 너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 바쁜 와중에도 일년이면 두세 번씩 나는 숙제를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해외 여행을 시켰다. 어느 해 일본 여행 중 어떤 식당에서 먹었던, 나무 쟁반 위의 반찬들 중 정말 조금 담겨 나온 생선 조림이 맛있었던 기억 외에 아이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때와 비슷한 모양의 일본식 생선 조림을 만들어 아들랭이 밥상에 올려 놓으며 나는 중얼 거린다. 엄마도 엄마 노릇이 처음이어서 잘하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말이다. 못 느끼는 새 이미 다 커 버린 아이들에게 대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