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의 마흔 한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해마다 어디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도
예약해야지 하는 강박관념, 또는
편의주의에서 벗어나 올해는 직접
생일상을 차려주기로 마음먹고
퇴근 이후 스케줄러를 모두 공백으로
놔두고 마트로 향해 장을 봐서
귀가했습니다.
뭐 아내 생일이 아니어도 별로
계획은 없지만요.^^
며칠 전부터 계획한 메뉴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봅니다.
1. 바지락 맑은 미역국
먼저 생일상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미역국입니다. 전날 준비해 놓고 당일 아침에 후다닥 먹이고 출근했습니다.
사실, 40여년 전 아내를 낳느라 고생하신 장모님께도 한 그릇 퍼다 드려야 하는데 멀어서....^^;;;
아내는 저와 달리 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고
맑은 미역국을 좋아해서 조갯살을 넣고 쌀뜨물로 깔끔하게 끓였습니다.
원래 미역을 양지랑 들기름에 볶다가 끓이면 참 맛있는데
그냥 이렇게 기름 없이 깨끗하게 끓이니까 냄비 째 냉장고에 넣어두고 냉국처럼 먹을 수 도 있습니다.
쌀뜨물로 물을 잡으면 미역이나 조개의 비릿한 느낌도 없애주고 구수한 풍미도 더해줍니다.
보기에도 더 있어보이구요.^^
귀찮아도 미역국 끓이는 법 자세히 보기▼
금일도에서 막 건져 말린 청정 미역을 물에 불려 적당한 크기로 자릅니다. 엄청나게 늘어나는군요.
만원짜리를 물에 불려 이렇게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쌀뜨물을 자작하게 붓고 다진마늘 조금과 MSG가 없는 해물맛선생님을 넣고 끓입니다.
알이 실하고 싱싱해 뵈는 바지락 살이 있어 사왔습니다. 한소큼 끓을때 냉큼 집어넣습니다.
간은 국간장으로 짜지않게 하구요.
뽀얗고 시원한 마누라 생일용 바지락살 미역국이 됐습니다.
2.봄동,부추 겉절이
풋풋하고 쌉싸래한 봄맛, 봄동을 가지고 조선부추를 곁들여 겉절이를 했습니다.
가장 단순하고 입맛나는 양념으로 버무려 봄동과 부추의 향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문득 지글지글 잘 구워진 삼겹살이 떠오르는군요.
다 알아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엿보기 ▼
봄동과 부추는 잘 씻어서 물끼를 빼고 길쭉하게 썰어줍니다.
고춧가루, 고추장, 식초,검은깨,올리고당 그리고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해서 조물조물 무쳐냅니다.
고소함을 더하려면 참기름을 추가하면 되겠죠?
새콤,달콤하고 매콤한 봄동,부추겉절이가 뚝딱!
입안에서 퍼지는 풋풋한 향이 일품입니다.
3.봄동,비싼맛살 샐러드
겉절이가 있다해도 생일상엔 예쁘장한 샐러드가 있어야 제격이죠?
겉절이 만들고 난 재료에 보통 크래미라 불리는 비싼 맛살을 더하고 요거트 드레싱을 얹어 샐러드를 만듭니다.
물고기를 형상화하여 한껏 멋도 내봅니다.
고춧가루 양념에 비해 훨씬 파릇파릇한 기운이 감돌고
요거트 드레싱과 봄동, 부추의 조화가 상당히 입맛을 자극합니다.
샐러드는, 그리고 드레싱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
봄동은 손으로 자연스럽게 찢어 맨 밑에 깔아주고 크래미는 대각선으로 길게 잘라 올리고 부추를 얹습니다.
생선 대가리는 당근이 수고하고 있고 검은깨가 눈깔입니다.
생크림이 들어있는 떠먹는 요거트에 라임즙과 연겨자를 잘 섞어 드레싱을 만듭니다.
소금을 넣지않아도 크래미때문에 밥반찬으로 할게 아니라면 간은 충분합니다.
싱겁게 먹읍시다!!
요거트 드레싱을 누워있는 생선위에 살살 끼얹으면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있는 파릇파릇 봄동샐러드가 됩니다.
호두같은 견과류를 넣음 더 좋겠지만 풋풋한 봄내음을 방해하는 텁텁한 요소라서 과감히 제외시켰습니다.
봄동과 부추 그리고 크래미가 요거트 드레싱과 엮어내는 기대이상의 샐러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강추!!!
4.부추잡채
@1860641 E49E66DEB420287.JPG" "640" alt="">잔치에 빠지지 않는 잡채. 아내의 취향대로 고기 대신 어묵을, 시금치 대신 부추를 넣어 잡채를 만들었습니다.
일단 잘 퍼지지않는 좋은 당면을 써야하구요. 볶는다는 것 보다 무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야 맛있는 잡채가 됩니다.
알고보면 참 쉽고 간단한 음식이 잡채인데 왠지 번거롭게 느껴지는게 사실이죠.
꼭 무슨 날이 아니더라도 당면을 삶아서 물기만 빼 놓으면 찌개나 전골 사리로 또는 비빔국수를 해 먹어도 맛있습니다.
잡채 만드는 방법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만 ▼
사각어묵과 당근은 길게 채 썰어주고 부추도 길게 이등분만 합니다. 참느타리와 양파,대파도 준비하고 당면은 5분정도 삶아서 찬물에 헹군 뒤 물기를 빼줍니다. 양념장은 간장,물엿,다진대파-마늘,볶은깨,참기름,후추로 만들어 놓습니다.
굴소스를 조금 넣어도 좋습니다.
미리 양념을 하고 볶아야하는 고기나 시금치가 없어서 조리하기가 한결 간편합니다. 당근과 양파를 기름에 볶다가\
어묵,파,참느타리를 볶고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고 볶다가 한 숨 죽으면 물기뺀 당면에 양념장을 붓고 조물조물 무친 후,
한데 넣고 윤기가 날 정도로만 살짝 더 볶아줍니다.
야들야들하고 쫄깃한 잡채입니다.
식으면 비릿한 냄새가 나는 돼기고기가 없어 차릴 때 마다 데우지 않아도 되고
부추의 향이 잡채의 풍미를 본격적으로 잡아줍니다.
5.매운 닭볶음
아내가 그나마 제일 좋아하는 고기인 닭고기로 메인디쉬를 만듭니다. 닭 매운볶음.
국물 없이 숯불구이처럼 볶았습니다. 아주 맵게요. 매운양념이 쏙쏙 배서 정신 없이 먹었다죠?^^;;
혼을 빼놓는 매운맛에 맥주만 벌컥벌컥.... 옳지않아~~!!
닭을 어떻게 맵게 볶았나▼
볶음용으로 토막 쳐진 닭고기를 당근과 함께 월계수잎, 소금을 넣고 푹 끓여 익혀줍니다.
국물을 버리면 기름기가 빠진 야들야들한 닭고기가 남는데 한 입 뜯고 싶어도 꾹 참습니다.
간장에 청양고춧가루, 물엿, 다진 마늘-대파-홍고추를 섞어 양념을 만들고 양파, 대파, 은행등을 넣고
고루 잘 버무려줍니다.
센불에서 재빨리 볶아주면 재채기가 열 두번도 더 나오는 매콤한 닭볶음이 됩니다.
콜라겐이 풍부한 닭날개는 아내에게, 아니 아내의 피부에 양보해야겠죠?^^
6.떡케이크
나이 먹는건 서러워도 케익에 꽂힌 촛불을 후~~ 불어 끄는 퍼포먼스는 빠지지 않는 즐거움이죠.
바께쓰나 뚫어에서 미니케익이라도 살까 하다가 큰 맘 먹고 떡으로 케이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may님이나 복사꽃님 블에서 보아 온 쑥버무리.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종류이자 제철이 아니면 떡집에서도 안해주는..
얼마전 깨끗이 씻어 냉동해 놓은 쑥과 방앗간에서 빻아 놓은 쌀가루를 가지고 쑥버무리 케익에 도전합니다.
쑥버무리 이렇게 했더니 실패하더라▼
쌀가루는 체에 곱게 내리고 냉동실서 꺼낸 쑥은 해동 없이 준비합니다.
쌀가루에도 쑥에도 수분이 많아서 물을 부어가며 반죽합니다. 반죽에는 설탕과 소금을 넣었습니다.
알미늄 호일로 하트모양의 틀을 만들어 그 안에 반죽을 채워넣고 찜기에 올려 약 20분간 쪄주었습니다.
접시에 담아 틀을 제거하니 어설프지만 하트모양의 떡은 됐습니다만 원했던 포실포실 쑥버무리는 아닌것 같습니다.
반죽을 되게 한다고 했는데 질었는지 완전 '떡'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역시 떡의 세계는 멀기만 하구나.... 베이킹이나 떡이나 반죽의 중요성이 새삼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테두리에 제과점 케익 삘이 나게 베이킹용 유산지를 잘라 밴딩해주고 나이 대로 양초도 꽂으니
실패작이지만 나름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더군요.
맛은 애초 쑥버무리를 계획했던 사실을 잊은 채 먹으면 상당히 맛있는 그냥 떡입니다.^^;;
냉동 쑥이기때문에 파릇한 쑥이 콕 박혀있는 모습을 기대해선 안되구요.
아내 퇴근 전 짧은 시간동안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스펙터클하고 긴박했지만 다 먹고 나서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니 다리가 후덜덜.... 날이 날이니 만큼 거들겠다는 아내를 방에 밀어 넣고
우당탕탕!! 해 치웠습니다. 오늘따라 개수대가 왜이리 좁은지....--;;;
미역국은 해마나 빠지지 않고 끓여주었지만 이렇게 저녁 생일 상을 직접 차려본 것은 처음입니다.
아마 두번 다시 하지 않을듯. 요리을 생활화(?) 하고 있지만 힘들더군요. 잔칫상이란게....
다만 이 상차림의 효과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만을 바랄뿐입니다.^^;;;;
꽃 몇송이보다 낫겠죠?
생일, 늦은 저녁에 시어머니,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ㅇㅇ가 미역국이라도 끓어 주더냐?" 라고 하시며...
눈치 없는 아내,
"그럼요~ 잡채에 닭고기에 직접 떡케익도 만들어 줬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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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돌아오는 생신에는 어머니 찾아뵙고 평소 좋아하시는 것 만들어 드려야겠습니다.
아...간장게장, 참치뱃살 만들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
효도와 아내사랑은 끝이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