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로 말도 섞지 않는다고 전해지지만) 고든 램지의 스승으로 더 널리 알려진 마르코 피에르 셰프Marco Pierre White. 그는 2009년 은퇴를 발표하며 그동안 비평에 집착하게 만들었던 9개의 별을 모두 반납했다.
“나는 평생 미쉐린의 별에 집착했고, 내 요리의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음식에 대한 지식도, 그리고 실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내 영혼을 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젠 주방에서 일하지 않는 나에게 더이상 별은 필요치 않다.”
여전히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고 가끔 방송에도 출연한다. 하지만 주방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셰프로 불리기는 거부한다. 이 위대한 요리사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16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별 세 개를 받을 당시 그의 나이는 33살에 불과했다.
그리고 램지 셰프가 수습생일 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도 사실이다.
마르코 본인도 비슷한 차림으로 구석에 서서 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그는 영국 리즈의 가난한 공영주택 단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가 고든 램지의 대타로 방송에 출연했을 때 오히려 시청률은 떨어졌다. 방송용 멘트를 못하는 성격.
그때 마셨던 와인 중에는 1911 Chateau d’Yquem(한화로 1400만 원이 넘는다)도 있었다.
그는 셰프 세대 전부를 아우러서 특별한 존재다. 더 많은 요리사가 더 높은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인으로는 최초로 미쉐린 별 3개를 받았다.
“그가 나타난 이후의 요리 업계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80년대에 방영된 텔레비전 방송에는 미쉐린 별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르코 셰프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의 장난기와 기류에 반항하는 모습 등이 매력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건 충격적일 정도로 촌스런 80년대 패션 스타일이다.
저명한 사진작가 밥 카를로스 클락Bob Carlos Clark 이 촬영한 마르코 셰프의 사진. 그의 사진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 사진은 다른 셰프들이 주방에서 찍은 어떤 사진보다 많은 인기를 누렸다.
“나는 당장 주방으로 뛰어들어가 직접 껍질을 깎아서 완벽한 감자 칩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접시에 4만 원을 받았다. 이 돈은 감자 가격이 아니라, 내 시간을 쓸데없는 메뉴를 만든 데 들인 수고비였다.”
현존하는 최고의 셰프 중 한 명인 헤스톤 블루멘털Heston Blumenthal도 마르코의 주방 수습생 시절을 보냈다.
그의 전성기 시절 그는 스타터 메뉴와 주메뉴 사이의 빈틈을 노려 손님과 성관계를 했던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게 예민한 부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 라디오 방송에서 ‘신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어떤 후배 요리사는 자신에 몸에 마르코 셰프의 초상화를 문신할 정도로 그를 존경한다.
그가 2015년에 제작한 쿡 북 ‘화이트 히트25White Heat25’에는 뛰어난 책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흔적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사진이 담겨있다. 특히 지금과는 달리 훈남 시절의 요리사 마르코의 모습이 책 속에 가득하다.
영국 국적의 그는 16살에 고향인 리스를 떠나 런던으로 상경했다. 그는 알버트 루(프랑스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에서 미쉐린 별을 받음) 셰프의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레이먼드 블랑, 피에르 코프만 등의 요리사와 함께 일했다.
마르코 셰프는 26세에 처음으로 본인의 레스토랑인 하비스Harvey’s를 열고 이듬해에 미쉐린으로부터 별 1개를 얻는다. 이후 영국의 미식계를 뒤바꾼 요리사로 불리며 지금도 방송 출연과 레스토랑 경영을 하며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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