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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에 대한 집착이 세계사를 바꿨다
셰프뉴스

2016.03.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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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 대한 욕망은 향에 대한 욕망과 같다. 대표적인 것이 아마 중세의 향신료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매우 귀해서 말린 후추 열매 1파운드(약 453g)면 영주의 토지에 귀속되어 있는 농노 1명의 신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후추는 오늘날 전 세계 식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 되었지만 중세에는 후추를 비롯한 계피, 정향, 육두구, 생강 같은 향신료는 소수만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향신료에 대한 수요는 점차 늘어났고 이 거대한 수요로 말미암아 대항해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풍요롭기로 유명한 로마 시대에도 향신료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향신료가 서양의 귀족과 재력가들, 그리고 수도원의 식탁 위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손님들은 자신들을 초대한 집의 요리 맛과 부(富)의 진정한 상징이 된 향신료들을 보고 그 집의 주인을 평가했다. 귀족들은 양념 중에서 가장 비싼 것들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비용이 요리의 가치와 식탁의 품격을 좌우하며 풍미 또한 돋우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맛좋은 향신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전 세계를 탐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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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향료 무역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독점으로 다른 나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챙긴 이윤은 어마어마했다. 마젤란은 육두구와 정향을 찾아 세계를 탐험했다. 종교의 이념이 지배하고 육체와 감각이 천시되었던 중세 유럽의 어둠을 향신료가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정화 함대가 서양과 비교할 수 없는 위엄의 대 함대를 이끌고 먼저 세계를 누볐지만 마땅히 교역할 물건이 없어서 문을 닫은 것에 비해, 서양의 향신료에 대한 감각의 욕구가 서서히 유럽을 깨우기 시작했다. 감각이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 향신료는 다양한 자극을 선물한다

다양한 향신료는 다양한 풍미가 있고 다양한 풍미는 맛에 대한 흥미를 끈다. 이런 특징은 강력하여 본인이 먹어본 음식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배가 고플 때 만난 향신료 냄새는 그 향신료가 들어간 과거의 추억을 바로 불러온다. 요리의 특징이 향신료의 특징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정도가 향신료의 모든 기능은 아니다. 우선 향신료는 침이 잘 나오게 하여 소화를 돕는다. 음식을 먹을 때 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맛있으면 침이 나오고 침이 나오면 맛이 있기도 하다. 향에 따라 침이 나오는 정도가 다른데 고추와 후추도 자극성이 있고 침이 나오게 하는 향신료이다. 흑후추는 소화 흡수를 돕고 치유의 기능도 있다. 소화 흡수에 도움을 주었던 물질은 몸이 기억하고 이 물질이 다시 들어오면 쾌감을 준다는 이론이 가능하다. 향신료는 온도 감각 수용체를 자극하여 맛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캅사이신과 후추의 피페린이 온각을 자극하여 통증을 유발하고, 화상을 입었다고 판단한 뇌에서 진통 성분을 방출하여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진통 성분과 자극에 끌리는 것이다. 강한 자극은 맛을 기억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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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는 향에 대한 많은 이해와 기술을 낳았다. 식물은 품종과 산지에 따라 향취가 다르며, 사용하는 부위가 과실, 꽃, 줄기, 잎 등 어느 부위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예를 들어 매운맛 하나도 종류에 따라 느낌이 다르게 된다.

  • 후추는 혀의 앞쪽 끝 부분을 따라 기분 좋게 얼얼한 감각을 유발하나, 정상적인 양을 많이 초과해서 섭취하지 않는다면 목 조직을 넘어가서는 거의 효과가 없다.
  • 고추는 이와 달라서, 아주 낮은 농도로도 목구멍 깊숙이 날카로운 통증이 감지되지만 입 주변이나 혀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 생강은 혀의 양 옆과 뒷부분에서 좀 더 풍부하고 원숙한 매운맛을 내지만 목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다.
  • 겨자는 독특한 매운 맛을 내며, 휘발성이 있고, 분쇄한 겨자분말이 물과 혼합하였을 때 효소작용에 의해 생겨난다. 겨자의 온화하고 날카로운 방향성의 매운맛은 입 표면을 뒤덮는다.

이것은 심지어 동일한 과일에서도 껍질과 과즙 등 부위에 따라 다르고 추출하는 방법에 따라서도 다르다. 압착이냐 수증기 추출이냐 용매추출이냐에 따라 다르고 어떤 용매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만들어 지는 제품 형태가 에센셜오일인지, 에센스인지 올레오레진인지에 따라 향취와 용도가 달라진다. 향에 대한 애착이 이런 기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향신료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다른 원료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매운 향신료는 ‘후미’가 있는데 이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 작용한다. 그래서 다른 성분과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써 그 가치를 드러낸다. 소금이 그 자체로는 짜기만 한데 음식에 들어가면 놀라운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향신료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화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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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신료를 좋아하는 이유?

이렇게 나름 사용이 쉽지 않은 향신료를 그렇게 애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 코넬 대학의 폴 W. 셔먼과 제니퍼 빌링은 4500종 이상의 고기요리에 사용된 향신료를 분석하여 향신료가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에는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향신료를 썼는데 결국에는 이 자극이 익숙하고 좋아져서 요리에 향신료를 쓰는 단계로 진화했다는 해석이다. 예전에는 냉장시설이 없어서 음식이나 재료가 상하기 쉬웠다. 실제로 인도나 브라질처럼 음식물이 상하기 쉬운 무더운 지역의 전통 요리법이 핀란드처럼 추운 지역의 요리법보다 더 많은 종류의 향신료를 사용한다는 증거도 있다.

향신료가 여러 나라의 요리에서 쓰이는 빈도를 조사해보면 마늘, 양파, 칠리, 큐민, 계피 같이 세균을 특히 잘 퇴치하는 독한 향신료들은 추운 나라보다 더운 나라의 요리법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파슬리나 생강, 레몬, 라임처럼 항균작용이 약한 향신료들이 쓰이는 빈도는 더운 나라건 추운 나라건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식물보다는 동물 위주의 메뉴에 향신료가 많이 쓰인다. 식물은 죽은 다음에도 단단하고 질긴 세포벽이 미생물의 침입을 상당부분 막아주어 보존성이 길기 때문이다. 셔먼은 세계 각국의 채소 요리책을 조사한 후속 논문을 통해 고기 요리가 채소 요리보다 향신료를 많이 쓴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신료(고춧가루)를 많이 쓰는 매운 요리를 보면 철판낙지볶음, 불닭, 매운탕, 육개장, 아귀찜 등 주로 고기 요리가 많다.

하지만 향신료를 보존료로 쓴다는 주장은 좀 무리가 있다. 차라리 이미 약간 상한 음식을 좀 더 먹을 만하게 해줬다는 해석이 좀 더 그럴 듯하다. 중세 유럽은 향신료 가격이 정말 비쌌다. 거의 금값이었다. 그런 향신료를 넣어서 보존성을 높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 면에서 향신료를 넣어서 상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했다는 것도 약간 무리가 있다. 당시에는 귀족이나 부자들만 향신료를 쓸 수 있었는데 귀족들에게 제공되는 식재료 중 상한 재료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신료가 나쁜 맛을 완전히 개선해주지는 않는다. 고추나 타임을 넣으면 그나마 조금 나아지지만 기대치에는 훨씬 못 미친다. 아주 약한 나쁜 냄새는 더 강한 냄새를 통해 주의를 돌릴 수 있겠지만 나쁜 냄새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향신료는 그냥 고기를 훨씬 맛있게 먹기 위한 용도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약간 상한 느낌 또는 잡취를 없애주는 것은 그냥 보너스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는 향신료인 고춧가루는 미생물을 억제하기는 커녕 자체가 미생물 범벅이다. 캡사이신이 포유류에게나 매운 성분이지 미생물에게는 전혀 맵지 않은 성분인 것이다.

결국 당시 귀족이 자신의 능력(권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향신료를 사용했다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다. 향신료가 흔해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향신료를 많이 쓴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었고, 음식에 향신료를 많이 쓸 수 있을 정도로 능력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향신료가 시들해지자 음식의 종류와 장식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능력을 과시하던 시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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