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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셰프 다리미 퍼포먼스의 주인공’ 최신근(SK choi) 셰프를 만나다
셰프뉴스

2016.06.2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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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의요리(料理の鉄人), 1993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 대결 방송이다. 특정한 재료를 주제로 전문 셰프들이 나와 요리 대결을 펼치는 이 방송은 첫 방송 이후로 9년간 309편이 제작되었다. 이 방송 포맷은 아이언셰프Iron Chef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타국으로도 뻗어 나갔는데, 2001년도에는 미국에서, 2010년도에는 영국과 호주에서, 2012년도에는 베트남과 태국에서, 각 나라마다의 아이언셰프 방송이 만들어졌다.

2012년 방영된 태국 아이언셰프Iron Chef Thailand, 된소리가 강한 태국어 방송 중에서도 또렷한 한국어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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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스타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켜봐라!”
당시 W 호텔 소속으로 모던 일식요리를 하고 있던 최신근 셰프였다. 새로운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잠시 한국에 들렀다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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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다리미로 익혀? 기발한 아이디어가 카메라의 시선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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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롱이라고 하잖아요. 스팀 나오는 다리미. 그걸로 다시마 사이에 재워 둔 생선살을 그냥 쫙!”

카메라가 놓칠 리 없다. 비록 주방에서는 해본 적도 없던 기이한 행동이었지만, 색다른 장면을 기대한 시청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장면이다.

태국에서는 최신근이라는 이름보다 이니셜 SK로 더 유명하다. 손님과 교감하며 초밥을 쥐어주는 오마카세를 자주 해서인지, 오픈 키친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카메라 앞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방송에 나가려니 겁도 많이 났죠.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도전하다 보면 돈은 못 벌 수는 있어도,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다’라고 말했던 조언이 생각나서 출연하기로 했어요”

태국의 한 매체는 그의 요리를 ‘진화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재료 간의 조합을 영리하게 풀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스타일의 아시안 퀴진을 선보이고 싶다는 진취적인 그에게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냐 물으니 “처음엔 요리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생계를 위한 요리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요리로

처음부터 요리사를 원한 건 아니었다. 보디빌딩 선수를 준비했으나 허리를 다쳐 진로를 틀어야 했고, 고등학생 때 친구를 따라 들른 요리학교 유학 설명회가 계기였다. “상담만 받아도 공짜로 밥 먹을 수 있다는 친구의 꼬임에 속아서 갔어요. 근데 그 설명회가 제 요리사로서의 첫 시작이 될 줄은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죠.” 그가 진학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학교, 핫토리 영양 전문학교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학업과 생계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신문 배달과 초밥집 막내를 전전하며 졸업할 수 있는 출석 일수를 겨우 맞췄다. 입에 풀칠하느라 3년 동안 배운 것이라곤 어깨너머로 배운 초밥 잡는 법이 전부였다. 그래도 이 요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건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 기술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3년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조선호텔 조리부에 입사했다. 한국의 일식은 그가 배운 것과 조금 달랐다. 일본 현지의 방식이 아닌 한국식 일식이라는 조금 변형된 형태로 일해야 했다.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하는 수고로움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요리를 배울 기회가 적고, 주방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자극이 없는, 쳇바퀴 같은 생활은 성에 차지 않았다.

“당시에는 새로운 요리를 접할 기회도 적었고, 새로운 요리를 배우려면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수입 원서가 있는 대형서점을 가끔 찾아갔는데, 거기서 그 책을 본 거죠.” 지금도 요리가 막힐 때면 가끔 꺼내 읽는다는 아키라 백 셰프의 책이었다.

“일식 요리사, 운동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요리를 시작했다는 점이 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신근 셰프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시간 동안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책을 다 읽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요리를 계속할지, 틀을 깨고 나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했던 그는 돌파구를 찾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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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달려들어 얻어낸 일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책에 쓰여 있는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열흘 만에 받은 답변에는 ‘열심히 해라. 응원한다’는 식의 상투적인 내용만 적혀있었다.

“당시 호텔을 나와서 대기업에서 일하던 중이었는데 한 달 만에 사표 쓰고 미국행 비행기 표를 샀어요. 가서 부딪혀보자.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미국에서 일하려면 워크퍼밋(EAD : 미국에 일시 거주 중인 외국인에게 주는 근로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그가 옐로 테일Yellow Tail에 처음 찾아간 날은 새해 첫날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유명 호텔 벨라지오 내에 있는 레스토랑답게 홀에는 신년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최신근 셰프는 겨우 바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바 테이블에 앉아 셰프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했다. 혼자 온 동양인이 16만 원의 코스 요리를 시키자 주변 사람들은 쳐다보며 수군댔다. 개의치 않았다.

“음식을 가지고 오는 서버에게 셰프를 만나러 왔다고 말했고, 잠시 후 셰프가 나오더라고요. 저는 만나자마자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되냐고 다짜고짜 물었어요.”

어떻게든 미국땅에서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미 직장을 제 발로 나왔고, 그렇지 않아도 수중에 돌아갈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었다. 여차해서 주방일을 구하지 못하면 들고 간 200만 원어치 칼 가방이라도 팔아 다른 직업을 알아볼 각오마저 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키라 백 셰프 아래에서 무급 스타지 기회를 얻었고, 2013년에는 태국에 있는 W 리조트 꼬사무이Retreat Koh Samui에  주방장Chef de Cuisine까지 맡게 되었으니 무턱대고 떠났던 것 치고는 결과가 나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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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활동할 것

이젠 한국으로 돌아오기엔 현지인들에게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곧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새로 오픈할 레스토랑 준비에 한창이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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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라면 으레 음식을 만드는 종업원으로 여겨지는데 온 벽과 대문에 사진을 도배해놓으니 어색한 느낌이 든다. 스타덤으로 레스토랑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려 해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하지만 ‘레스토랑과 셰프, 어느 정도의 역할 구분이 필요하진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은 최신근 셰프를 만나면서 깨어지게 되었다. 레스토랑이 곧 셰프고, 셰프가 곧 레스토랑이고, 손님의 입장에선 전혀 구분이 없다.

주야장천 요리만 하느라 손님은 내다보지 못하는 요리사가 싫어 해외로 발길을 돌렸던 그는,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의 총 책임자를 넘어 한 레스토랑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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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에 거침없이 결정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최신근 셰프. 요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요리를 시작했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요리가 있었다기보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도를 찾기 위해 해외로 나간 셈이다. 3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호텔을 나와 미국으로 갔을 때도, 미국에서 다시 태국으로 옮길 때도 겁이 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솔직히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셰프들도 다 이런 공포를 경험했고, 고생도 말로 못 할 정도로 했을 거에요. 앞으로 요리하는 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겁이 날 때는 이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잘 모르니 두려울 수밖에 없죠. 근데 그걸 이겨내야 도전인 거에요.”

· 셰프뉴스에서 보기 : http://chefnews.kr/archives/1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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